디지털 장의사는 사망자의 온라인 자산과 계정을 정리하는 신생 직업군이지만, 국가별로 이를 다루는 법제도의 수준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이 글에서는 유럽의 디지털 유산 관련 법률과 제도화 수준을 바탕으로, 한국의 현재 법적 위치와 한계를 비교 분석해 보겠습니다. 나아가 제도 개선의 방향성도 함께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유럽의 디지털 유산 법제도와 개인정보 보호 기준
유럽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제도화와 법적 기준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2018년 시행된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일반 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과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명확한 지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GDPR에서는 정보주체의 권리뿐만 아니라, 사망 이후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접근 권한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도 개별 국가의 민법 또는 유언법과 연계해 규율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많은 EU 회원국은 이미 디지털 유산 관리에 대한 구체적 조항을 민법이나 상속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2018년 연방법원 판결(BGH, Bundesgerichtshof)을 통해 사망자의 페이스북 계정을 유족이 상속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따라 SNS 계정, 이메일, 클라우드 등도 상속 대상이 된다는 점을 법적으로 인정했습니다. 프랑스는 ‘디지털 사후 처리법’을 통해 사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유언장(Digital Will)을 미리 작성해 데이터 삭제, 계정 유지, 제삼자에게의 위임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도 보호 및 상속의 대상이 된다는 인식이 제도화되어 있으며, 국가별로 공공기관이나 법원이 디지털 장의사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또한 유럽은 데이터의 처리 주체와 권한 범위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사망자의 개인정보에 접근하려는 유족 또는 대행인은 반드시 법적 증명 서류를 갖추고 사망자의 생전 의사(유언 포함)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장의사에 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는 일정한 교육과 윤리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유산 처리 플랫폼을 연동하거나 공공 서비스와 통합 관리하는 방식도 채택되고 있습니다. 결국 유럽의 제도는 사망 이후 개인의 정보가 무분별하게 유출되거나 방치되지 않도록 법률, 기술, 사회 인식이 균형을 이루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 역시 공공 업무의 연장선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단순 민간 서비스가 아닌 공공 윤리와 정보 주권 보호의 일부로 제도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디지털 장의사 제도의 현주소와 법적 공백
한국은 디지털 장의사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군은 법적으로 정의되지 않았고, 공식 자격증, 인증 제도, 표준 업무 가이드라인도 없는 실정입니다. 대부분의 관련 서비스는 민간 스타트업이나 장례지원 업체가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업무 범위, 처리 방식, 책임 구조는 업체마다 다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법적 권한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장의사가 사망자의 계정을 정리하거나 삭제하려면 유족의 위임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통신비밀보호법 등에 위반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망자의 정보는 법적으로 정보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디지털 장의사가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플랫폼이 유족의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디지털 장의사의 업무를 거부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또한 플랫폼 간의 처리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해외 플랫폼은 사망자의 생전 설정이나 유언장 없이는 계정 삭제를 거절하기도 하며, 국내 플랫폼인 네이버, 카카오는 사망자의 계정 삭제 요청에 대해 사망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위임장 등 엄격한 서류를 요구하면서도 계정 내 콘텐츠 접근은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 차이는 디지털 장의사의 실무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2024년부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디지털 유산 정리 지원 사업’을 시범 운영하고 있으나, 이는 공공사업의 성격이 강하며, 디지털 장의사 제도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국가 차원의 정식 법제화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관련 법안 발의 역시 초기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의 디지털 장의사 제도는 제도적 틀 없이 민간 시장만 앞서 운영되는 불균형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비교적 다음과 같이 명확합니다. ① 유족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② 사망자의 프라이버시 보호가 제각각이다. ③ 디지털 장의사 업무의 신뢰성과 전문성이 낮다. ④ 무자격 업체의 난립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커진다. 이러한 상황은 반드시 법률적 기준과 제도화를 통해 개선돼야 하며, 유럽의 사례는 한국이 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주는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제도화 수준 격차 해소를 위한 한국의 과제와 방향성
한국이 유럽 수준의 디지털 장의사 제도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적 정비, 기술 인프라 구축, 사회적 인식 제고의 세 축이 동시에 움직여야 합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법적 지위 확립입니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민법, 상속법 등을 아우르는 통합적 ‘디지털 유산관리법’ 제정이 시급합니다. 이 법은 디지털 장의사의 정의, 업무 범위, 자격 요건, 유족의 권리, 플랫폼의 의무를 포함해야 합니다. 두 번째 과제는 공공 인증 자격제도의 도입입니다. 현재 민간 업체는 내부적으로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국가가 인증한 디지털 장의사 자격이 없다면 신뢰성 확보는 어렵습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인증 과정, 표준화된 교육 커리큘럼, 자격시험 등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고 개인정보 보호 수준도 함께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플랫폼과의 연계 시스템 구축입니다. 유럽에서는 인증된 전문가가 API를 통해 사망자 계정 처리 요청을 제출하고, 공식적으로 정해진 기간 내에 계정 삭제, 백업, 전환 등의 처리가 가능합니다. 한국에서도 카카오, 네이버, 구글, 유튜브 등 주요 플랫폼과 협의해 디지털 장의사 전용 포털 또는 디지털 유산 처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 시스템은 삭제 요청, 유언장 확인, 유족 인증, 절차 진행 등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과제는 디지털 죽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입니다. 디지털 장의사는 단순한 기술 서비스가 아니라, 사망자의 흔적을 정리하고 유족의 상실을 돕는 ‘디지털 애도’의 전문가입니다. 사회 전체가 이러한 직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도적 지지를 보낼 때에야 비로소 디지털 장의사는 공공성과 윤리성을 함께 갖춘 신뢰받는 직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현재 디지털 장의사 제도화에 있어 유럽보다 3~5년은 뒤처진 상황입니다. 그러나 유럽의 제도와 시스템은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선례이며, 그 경험을 반영해 빠르게 법제화에 나선다면, 한국도 정보사회에 걸맞는 디지털 사망관리 체계를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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