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라는 개념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을 정리하고 상속할 수 있도록 법제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명확한 입법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 글에서는 해외 입법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에서의 현재 디지털 장의사에 대한 법적 위치를 비교 분석해 보겠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디지털 장의사 법제화 흐름
디지털 장의사라는 개념이 가장 먼저 논의된 곳은 미국입니다. 디지털 사회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망자의 이메일, SNS, 온라인 자산 등에 대한 법적 권한을 유족에게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유산법 혹은 디지털 자산 접근 권한 관련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Revised 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 (RUFADAA)로,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RUFADAA는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상속인이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명확히 정하고 있으며, 이 법률을 통해 지정된 유산 집행자나 법정 상속인이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 SNS 등의 접근 권한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특히 고인의 생전 설정과 플랫폼의 정책보다 법적 상속권이 우선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장의사가 사망자의 의사와 상속인의 권리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법적 근거로 자주 활용됩니다. 유럽 또한 디지털 장의사 개념에 대해 점차 제도화를 추진하는 중입니다. 특히 독일에서는 2018년 연방 대법원에서 사망자의 페이스북 계정은 상속 대상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디지털 자산도 일반 유산처럼 상속되어야 한다는 법적 판례를 마련했습니다. 이후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GDPR(일반 개인정보 보호법)과 함께 디지털 유산에 대한 유족의 접근 권리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처리 방침을 생전 명시하도록 장려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으며, 유족이 해당 데이터의 보존, 삭제, 이전을 직접 신청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은 디지털 장의사 개념을 단순한 민간 서비스가 아닌 법제도와 연결된 공적 기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고인의 사생활 보호와 상속인의 권리를 법률적으로 균형 있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자산의 가치가 날로 커지고 있는 만큼, 그 정리와 권리 이전이 자의적이거나 플랫폼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의 디지털 장의사 관련 법률 현황과 한계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디지털 장의사라는 단어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나 IT 기업들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디지털 장의사와 관련된 명확한 법적 정의나 제도화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입니다. 고인의 디지털 자산을 상속인이나 제삼자가 정리하려 할 때, 어떤 법에 의거해야 하는지 불명확하며, 이는 유족에게도 디지털 장의사에게도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인이 사용하던 네이버, 카카오, 구글, 애플 계정에 접근하려고 할 때, 유족은 각 서비스 업체의 자체 정책에 따라 제각기 다른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어떤 플랫폼은 사망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만으로 처리가 가능하지만, 다른 플랫폼은 법원의 판결문이나 상속인 대표 지정서까지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통일된 법률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 장의사의 업무는 플랫폼마다 다른 방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으며, 유족 역시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현행 민법상 상속의 개념은 여전히 물리적 자산 중심입니다. 디지털 자산, 특히 SNS 계정이나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 영상, 암호화폐 지갑 등이 상속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상속인이 이러한 자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거나, 디지털 장의사를 통해 정리를 요청하더라도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보니 정리 과정에서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정부 차원의 움직임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2022년 이후 개인정보 보호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디지털 상속 제도화에 대한 연구 용역이나 간담회를 진행했으나, 실제 법률 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2024년 국회에서는 일부 의원이 디지털 유산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으나 논의는 정체되어 있으며, 공청회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은 아직 제도 밖에 존재하는 상태로, 법적 보호는 물론 공적 자격 체계조차 마련되지 않은 실정입니다. 이로 인해 디지털 장의사는 정리 요청을 받을 때마다 법률적 회색지대 속에서 일하게 되며, 유족과 플랫폼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 큰 제약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장의사 제도화를 위한 한국의 과제
현재 한국은 디지털 장의사라는 개념은 사회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법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제도화의 필요성이 매우 큰 상황입니다. 디지털 상속이 일상화되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이제는 디지털 자산도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처럼 상속 가능한 법적 자산으로 인정해야 하며, 이를 전문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규정해야 할 시점입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과제는 디지털 유산의 법적 지위 개념을 정의 내리는 것입니다. 현행 민법에서 유산의 정의는 모호하고, 디지털 자산이라는 용어 자체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사망자가 남긴 SNS 계정이나 온라인 사진, 유튜브 채널, 가상화폐 지갑 등이 과연 상속 대상인지, 혹은 단순한 정보인지 판단이 어렵게 만듭니다. 따라서 디지털 유산을 민법상 유산의 범주로 명시하고, 해당 자산에 대한 상속인의 권리와 접근 절차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둘째, 디지털 장의사에 대한 공식 자격 제도 도입이 필요합니다. 현재 디지털 장의사는 누구나 자칭해 활동할 수 있으며, 법적 기준, 윤리 의무, 개인정보 보호 규정 등에 대한 별도 가이드라인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개인정보 유출, 위조문서 사용, 상속인 간 분쟁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공식 자격증 제도와 함께 교육과 윤리 기준을 세운다면, 디지털 장의사는 법률과 기술, 정서적 케어까지 포괄하는 전문 직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사망자 계정에 대한 통일된 처리 의무와 절차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플랫폼마다 자율 규정으로 운영되면 유족이나 디지털 장의사 모두 각기 다른 절차를 수십 번 반복해야 하며, 결국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 정리는 혼란 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사망자 계정 처리 표준 지침을 마련하고, 모든 국내 플랫폼이 이를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하는 입법이 필요합니다. 넷째, 디지털 유산 정리에 필요한 법률 및 기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국가공인 디지털 유산 등록 시스템이나, 유언장의 디지털 인증 시스템, 디지털 상속 공증 플랫폼이 있다면 유족은 더 쉽게 계정 삭제나 데이터 이전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반이 마련되면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은 더 분명해지고, 시민들도 사망 후 자신의 디지털 흔적이 안전하게 정리될 수 있다는 신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디지털 장의사는 미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문 인력이며, 그 역할이 법제도로 보호받지 못하는 지금은 매우 불안정한 과도기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디지털 상속과 개인정보 보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디지털 자산의 법적 정의, 장의사의 제도화, 통일된 플랫폼 처리 기준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과제를 외면한다면, 디지털 장례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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